재개발 임원대상 의무교육, “전형적인 탁상행정”

공공은 권한을 쥐고, 조합은 책임을 뒤집어쓰는 구조

극소수 비리를 전체 조합의 본질처럼 몰아가는 편견

의무교육보다 시급한 것은 현실적인 지원과 정당한 처우

그래픽: ai 활용

재개발·재건축 조합 임원 의무교육이 본격 시행되면서 현장 반발이 커지고 있다. 필자는 재개발조합장 출신으로서 그 무게를 직접 감당해 본 사람이다. 서울시가 시행하던 관련 교육도 이수했고,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느껴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고 대학에서 전문과정까지 밟았다. 그래서 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교육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현장을 돕기보다 또 하나의 부담만 더하는 제도에 가깝다.

 

재개발사업은 본질적으로 공공성이 강한 사업이다.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고 도시기능을 회복하는 일은 사적 이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적 과제다. 그렇다면 원칙적으로는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공공은 인력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업의 상당 부분을 조합과 민간에 맡기고, 인허가권과 감독권은 그대로 쥐고 있다. 공공성이 강한 사업을 민간에 위임해 놓고, 문제만 생기면 조합과 조합 임원에게 책임을 집중시키는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이 구조의 가장 큰 모순은 책임과 전문성의 불균형이다. 구청을 비롯한 행정기관은 전문가 조직이고, 시공사와 정비업체, 설계자, 감정평가법인, 변호사, 회계전문가도 모두 전문가다. 그런데 정작 이 거대한 사업의 최전선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조합 임원은 법에 따라 조합원 중에서 선출해야 한다. 특히 재개발구역은 대체로 낙후된 지역이 많고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이런 곳에서 조합 임원은 잘해도 욕을 먹고, 조금만 잘못해도 형사처벌과 민사책임, 사회적 낙인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누가 선뜻 조합 임원을 맡겠는가. 유능하고 생활이 안정된 사람일수록 오히려 피하려는 것이 당연하다.

 

정비사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조합 임원의 업무를 결코 가볍게 말할 수 없다. 조합 임원은 수천억원, 많게는 조 단위의 사업비를 다루며 법률·회계·세무·행정·분양·이주·철거·소송·민원 대응을 총괄해야 한다. 국회나 행정당국이 생각하듯 몇 시간의 교육을 추가로 이수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도시정비법 시행 초기에는 제도가 미비해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지금보다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도시정비법은 땜질식으로 손질돼 왔다. 시행령과 조례, 각종 지침까지 더해지면서 규제는 갈수록 촘촘해졌다. 이제 정비사업 현장은 예전처럼 허술한 제도 틈새를 비집고 쉽게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감옥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서는 비리를 저지르기도 쉽지 않은 구조가 됐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여전히 조합을 비리의 온상처럼 다룬다. 극소수 사건을 근거로 대다수 조합 임원을 같은 눈으로 보는 것은 현실 왜곡이자 편견이다.

 

더 답답한 것은 조합 임원의 보수 문제다. 정비사업이 막대한 사업비와 첨예한 이해관계를 다루는 고위험 사업임에도, 조합 임원의 급여와 복지는 늘 도덕성의 잣대로만 재단된다.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 어느 수준부터 과도한지에 대한 기준도 없이 무조건 많다고 비난하는 식이다. 그러나 조합 임원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사실상 거대한 공공성 사업의 운영 책임자가 된다. 그 책임의 크기를 생각하면 적어도 구청 국장급 수준의 급여와 복지는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 책임에 상응하는 헌신을 요구할 수 있고, 그나마 역량 있는 사람도 맡을 수 있다.

 

정비사업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투명성은 현장을 모르는 규제를 하나 더 얹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공공이 정말 공공성을 말하고 싶다면, 조합 임원을 잠재적 범죄자처럼 다룰 것이 아니라 상시 법률·회계 자문체계, 표준화된 업무 매뉴얼, 신속한 행정지원, 권한과 책임의 균형, 정당한 처우부터 마련해야 한다. 재개발은 도시를 바꾸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공적 사업이다. 그렇다면 현장을 버텨 온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족쇄를 채우기 전에, 그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구조부터 만드는 것이 순리다.

 

필자 소개| 필자는 15년간 재개발조합장으로 활동하며 정비사업을 현장에서 직접 수행했다. 현재 관련 사업의 직접 이해당사자는 아니며, 이 글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기사문의: 010-2399-3574 김휘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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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4.10 13:51 수정 2026.04.1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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